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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최현길이 만난 사람] 쓰러진 신영록 살린 ‘9분의 기적’ 그 남자! 김장열
    등록일  
    2011-08-09 오전 9:17:44 조회수 5557

    제주 김장열 트레이너는 신영록이 쓰러졌을 당시 신속한 응급처치로 이른바 '9분의 기적'을 만들어 낸 주인공 중 한 명이다. 그는
    향후 재발방지를 위해 더욱 철저한 대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트위터@binyfafa


    심장마비로 그라운드에 쓰러져 50일 만에 의식을 회복한 신영록(24·제주)에게 기자의 관심이 남다른 이유가 있다. 신영록이 죽음의 문턱을 오갈 무렵, 기자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 한 아픔을 참아야했다.

    견디다 못해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생사가 오간 신영록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재활의 강도도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수술과 재활을 통해 신영록이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그래서 신영록의 완쾌를 바라는 마음은 더 간절하다.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날, 꼭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봤다.

    신영록이 이처럼 빠르게 회복한 것은 주위의 도움 덕분이다. 이른바 '기적의 조력자'들이 있다. 당시 그라운드에서 수술대까지 옮겨진 시간은 정확히 9분이다. 그래서 '9분의 기적'이라고도 한다. 그 조력자들 중 제주 유나이티드 김장열 트레이너(45)를 빼놓을 수 없다.

    쓰러진 신영록을 신속한 응급처치(심폐소생술)로 구해낸 은인이다. 재활 과정에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를 만난 이유는 기적의 전말을 듣고 싶어서다. 그를 인터뷰한 날은 일본 선수 마츠다 나오키(34ㆍ마츠모토 야마가FC)가 훈련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진 다음날(8월5일)이다.

    -신영록이 쓰러진 5월8일(제주-대구 전)로 시간을 돌려보죠.

    "그날 경기 막바지(후반 37분), 영록이가 투입됐죠. 사실 출전에 앞서 워밍업을 하고 그라운드로 들어설 때만 해도 특별한 이상이 없었어요. 투입된 후 슛 2차례를 했는데, 이상하게 영록이답지 않은 플레이였죠.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어요. 저희(트레이너)는 볼에 시선을 주지 않고 먼저 선수(동작을)를 따라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구르듯 넘어지더라고요. 나무 쓰러지듯 탁 쓰러지는 게 아니라. 영록이가 깨어난 뒤 저희 트레이너들끼리 한 얘기였지만 '영록이 참 대단하다. 그렇게 넘어질 때도 예쁘게 넘어지냐' 그런 농담도 했죠."

    신영록이 쓰러질 때 제주 주장 김은중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김 트레이너가 들어갔을 때는 신영록이 마치 간질을 하듯 몸을 뒤틀었다고 한다. 그는 "(신영록의) 혀가 말려들어가고 눈이 뒤집혀 있었죠. 경련도 하고요. 그런데 갑자기 경련이 멎으며 호흡도 멈추더라고요. 호흡 멎음과 거의 동시에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죠. 나중에 알았지만 간질 증상은 심장 박동이 정상적이지 못했던 탓에 일어난 일이랍니다. 주변 모두가 많은 도움을 주셨죠. 간호사들도 옆에서 잘 도와줬고. 대구 선수들이 영록이의 기도를 유지하려고 혀를 붙잡고 있는 상황이었고요. 제가 심폐소생술을 직접 해야 하는 위치였기에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전에도 그런 경험을 했나요.

    "사실 저도 그런 상태를 처음 봤어요. 이전에는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어요. 호흡이 멈춰버리고 심장마비란 생각이 드는 순간 정말이지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정확히 몇 분이 걸렸나요.

    "상황이 종료되고 시간 계산을 해봤어요. 경기장에 파견 나왔던 간호사들이 일지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영록이는 쓰러진 순간부터 병원에 실려 가기까지 8분으로 나와 있었죠. 저희가 동영상을 보며 따로 재보니 9분이더라고요. 솔직히 심폐 소생술을 할 때는 수 십분 이상이 지난 줄 알았죠. 당시 구급차로 경기장을 나와 병원까지 이동한 시간이 딱 4분이었어요. 심폐 소생술 등 응급 처치에 걸린 시간이 5분이었고요."

    -9분은 안전한 시간입니까.

    "정확히 말해 현장에서 모든 걸 해야 합니다. 사망처리까지 할 수도 있거든요. 앰뷸런스도 엄청나게 빨리 이동했죠. 사실 환자 상태를 봐가며 좀 더 천천히 움직였어야 했는데. 당시 모두가 경황이 없었어요, 경험도 없었죠. 그래도 그렇게 빨리 이동했으니 잘 풀렸죠."

    -프로야구 임수혁을 보면서 심폐 소생술의 중요성을 알았는데, 축구에서 모범 답안을 보여준 것 같은데.

    "임수혁 선수 사태를 본 뒤 저희 트레이너들이 의사들과 함께 활동 중인 대한스포츠의학회에서 세미나를 열어서 공부를 했어요. 이후 프로복서 최요삼 선수(2007년 12월 방어전 직후 실시한 뒤 9일만에 사망)문제도 연구를 했고요. 영록이 건은 저희가 모범 답안이라고 하기보단 모든 부분이 적절히 맞아 떨어진 거예요. 지난 달 17일에는 대한선수트레이너협회에서 세미나를 열고 영록이 사태를 분석해봤죠. 뭐가 잘못 됐는지 등 두루두루 확인했어요."

    -잘못된 부분은 뭔가요.

    "당시 자동 제세동기를 미처 구비를 못했거든요. 구급차에 있을 줄 알았는데, 하필 거기에도 없더라고요. 아주 불안한 상황이었어요."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듣던데.


    "제가 딱히 잘한 건 없어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평생에 다시는 경험 못할 일이죠. 한데, 언론과 주변에서 칭찬 해주실 때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영록이 부모님께도 죄송스러웠고…."

    -일본 선수 마츠다도 그라운드에서 사망했는데요.

    "영록이와 마츠다의 경우는 달라요. 영록이는 부정맥이었어요. 제세동기만 있었다면 응급처치가 가능했던 거고요. 그건 전기를 통한 자극을 주는 거거든요. 그러나 마츠다는 급성심근경색이었어요. 갑자기 혈관이 막혀버리는 증세죠."

    대개 스포츠단에는 팀 닥터와 트레이너가 있다. 이들의 역할은 분명하다. 닥터(의사)는 진단을 내린다. 제반 사항은 팀 닥터가 한다. 트레이너는 선수들이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드는 업무를 한다.

    -어떻게 해서 재활트레이너가 됐습니까.

    "9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학창 시절 전공으로 재활체육(특수체육)을 했어요. 군대에서도 좋은 경험을 했어요. 육군사관학교에서 물리치료병으로 군대 복무를 했었죠. 이후 90년 남자청소년대표팀 트레이너로 합류했다가 청소년 남북단일팀 트레이너 자격으로 포르투갈도 다녀왔죠. 이후 지인 소개로 92년 유공(제주 전신) 구단에 입사를 했고요."

    -신영록의 현재 상태는.


    "제주 한라병원에서 서울(삼성의료원)로 이송된 이후 영록이에게 자주 찾아가지는 못해요. 현재까지 보면 말은 정상적이지만 약간 어눌하고. 정상적인 보행은 아직 어렵다보니 주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고요."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영록이가 매주 금요일 몸 상태에 대한 평가를 받거든요. 갈 길은 아직 멀었습니다. 현재 영록이 상태는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하는 아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위치에 있어요. 다만 좀 더 있으면 스스로 앉을 수 있고, 누울 수 있고. 보다 오래 있으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고. 차차 보행도 하고 나아질 겁니다. 그렇게 몇 년 이후라도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면 정말 축하할 일이죠. 물론 운동선수로서 영록이가 다시 뛰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K리그 의료시스템의 개선점은.

    "만약 이번 영록이 건이 없었다면 현장 의료 시스템에 대한 얘기가 거론되지 않았겠죠. 사실 응급체계는 많이 갖춰질수록 좋은 거죠. 과유불급이란 말은 통하지 않아요. 좀 더 많이 지나쳐도 상관없어요. 물론 더 세밀하게, 세분화해서요. 앰뷸런스도 반드시 구비해야하고요. 단, 앰뷸런스의 역할이 빨리 이송하는 수송 역할에 국한돼서는 안 됩니다. 응급 처치를 확실히 할 수 있도록 내부 시설이 완벽히 구비된 시스템이 이뤄져야 하거든요. 그게 중요합니다. 좋아지리라 믿어요."

    ★김장열?

    ○생년월일 : 1966년 5월 30일
    ○학력사항:서교초(1979년 졸)-경성중(1982년 졸)-한성고(1985년 졸)-용인대(1993년 졸)
    ○주요경력사항
    -남북청소년대표팀 트레이너(1991년)
    -유공 코끼리축구단 입단(1992년∼현)
    -대한스포츠의학회 이사(현)
    -대한 선수트레이너 협회 차기회장

    [스포츠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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